'고통'에 해당되는 글 2건

분류없음

 프로젝트 - 손톱을 체상(體相)하다 !

콘텐츠 - 예술전령

NO.5  2010.09.06

 

<마음에서 자라나리>

 

 

 

 

두눈 _ 마음에서 자라나리 _ 브론즈, 손톱_ 실재크기 _ 2010 

 

주기적으로 절단되는 손톱은 문득 살아온 시간을 의식하게 한다. 잘려나간 손톱 조각은 삶의 치부와 고통을 간직한 삶의 흔적이다. 삶에서 겪는 시련과 인내는 마음속에 꽃이 되어 희망적 삶의 향기를 뿜는다.

몸으로 느낀 일화
200912, 대한민국 명장 에서 가구 명장님과 악수를 한 적이 있다. 순간 나는 움찔했다. 내 손에서 느껴진 명장님의 손은 온전한 손이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검지가 없는 아버지의 손을 보아왔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정작 내 몸은 그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뜻밖에 연민이 들었다.


 

 

시각음악 : 정봉원   출연 : 전지명  사진촬영 : 나민규

 

                                                                             마음에서 자라나리 작업과정        

                   
아버지의 손
두눈의 아버지는 젊은 시절 쇠를 가공하는 작업 중, 사고로 검지를 잃었고 10년 전쯤에도 약지를 잃었다. 이러한 역경을 이겨내며 40여 년 외길을 걸어 오신결과, 2006년에 대한민국 금속공예 명장이 되셨다.

장애를 이겨낸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아버지의 손에서 영감을 얻었다. 아버지의 상처 입은 실제 손을 떠내고 잃어버린 손가락은 삶의 흔적인 손톱으로 재현하여 온전한 손 형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 속에는 삶에 대한 긍정의 기운을 담아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완강히 거절하셨다. 몇 번이나 청해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비정상적인 손이지만 당당하게 보여도 좋지 않을까 했지만 아버지의 생각은 달랐다.

 

박강수님의 삶의 흔적 -손톱기부해주신 분들

 

손톱은 삶의 치부와 고통을 간직한 삶의 흔적
손톱은 손끝을 보호하고 우리의 건강 상태도 알려주는 유용한 생활 도구이다
. 그러나 삶을 영위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라나 때도 끼는 손톱은 생활에 불편을 준다. 그래서 자라난 만큼 절단되어 버려진다. 잘려나가는 손톱은 우리에게 살아온 시간과 때 묻은 존재임을 상기시켜준다. 손톱에 더욱 관심을 기우려 하나의 개체로서 생각해 보자. 몸에서 절단되는 고통을 손톱은 기특하게도 내색하지 않는다. 손톱 그 자체는 우리와 하나 일 때나, 떨어져 나갈 때나 우리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두눈은 손톱에는 잃어버린 마음도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두눈은 잘린 손톱을 다중에게서 기부받는다. 이 손톱들은 마음을 나누기위한 매개체가 되고 버려질 운명의 손톱은 새로운 생명력을 갖게 된다.

 

 

구상한 것을 몸으로 실행하면 의외의 요소들이 발생한다.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로 내 손을 떠서 검지를 부러뜨려 작업하는 것으로 수정했다. 그런데 외형 틀을 떼어내던 중 실수로 새끼손가락이 떨어지고 말았다.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원치 않게 잃은 손가락을 손톱으로 만드는 것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새끼손가락은 마음으로 하는 약속의 상징이며 손가락 중 심장과 가장 가까운 혈맥이 흐르는 곳이라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러다 불현 듯 손톱 꽃이 피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손가락 형상 끝에 손톱 조각 하나 하나를 꽃잎처럼 붙였다.

 

완성된 결과물에 대한 사유는 잠재된 의식을 파해 친다.
<마음에서 자라나리>가 완성된 후 연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연민이란 정상인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내가 과연 명장님보다도 우월하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결코 아니다.

그리고 움찔 했던 내 몸은 아버지의 실재 손을 뜨고자 했던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일깨워 주었다. 손가락이 절단되어 겪어야 했을 고통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으며 그러한 삶을 이해해 보려는 대화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승낙하지 않으셨던 것은 당연했다.

 



<마음에서 자라나리> 숭례문에서의 촬영


 

아버지의 잃어버린 손가락은 마음속에 핀 꽃이 되다.
<마음에서 자라나리> 디지털 콘텐츠를 제작하고자, 숭례문 복원공사 현장을 배경으로 나민규님이 찍은 사진을 감상한 윤영심님의 한마디가 두눈에게 힘이 되었다.

 

아버님의 검지손가락이 두눈 손끝에서 꽃으로 피어나신 것 같은데요

 

어쩌면 우리는 각박한 삶 속에서 인간으로서 더욱 가치 있게 생각해야할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순히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기 보다는 마음의 눈이 말하는 삶의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마음의 눈이 눈을 뜰 때, 진정성에서 뿜어 나오는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향기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이끌어 줄 것이다.

현시대를 살아가면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마음속에 숨겨진 꽃씨가 언젠가는 활짝 피어날 것이라는 긍정의 기운을 이 작품을 통해 서로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손가락을 잃어버린 명장님과 다시 악수를 한다면 이젠 그 분의 삶의 향기를 손에서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2010 대한민국 장인작품박람회  2010. 9. 15 ~ 18  장소 : 코엑스 3층 D홀

ps: <마음에서 자라나리가> 탄생할 수 있도록 삶의 흔적을 기부해주신 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두눈은 진솔한 것이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상상하고 실현하고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손톱 기부, 예술 전령 활동, 생각 더하기, 삶의 가치관 공유 등, 진솔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당신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옆의 마음 우표를 클릭하세요. 작품 제작 과정도 보실 수 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에겐 마음 우표, 인문학 강좌 온라인 수강 쿠폰 또는 점프 공연 초대권을 드립니다.                                                                                  

 

 재미 이상의 그 무엇 factory  


                                                                                  

 

 

 

 

마음이 동하셨다면 클릭 해주세요 ^^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0 0
분류없음

두눈은 논문 때문에 최근까지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었다. 논문을 쓰면서 매일 촛불 집회에 관련된 기사와 틈틈히 실시간 방송을 보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공권력과 싸우고 희생당한 사람들을 보며 감동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는 두눈 지금 현 시점에 난 무엇을 하고 있나?
시위에 참여한 국민의 저 실천에 두눈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그리고 인간으로 살아 있음을 다시금 느끼면서 나 자신이 너무나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예술로써 그들에게 보답하리라 다짐해 본다.
인터넷을 만들어낸 서양 문명에 감사하며…"

학교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항상 경찰서 앞을 지나치게 된다. 가두 행진을 막고자 폭력을 행사한 경찰과는 엄연히 다른 대도 경찰이 밉게 느껴진다. 경찰서를 지나쳐 가다 별 신경 쓰지 않았던 현판이 두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 문구가 “경찰이 새롭게 달라지셨습니다.” 가 아닌가?
참 어이가 없었다.


“경찰이 미쳤구나! 이제는 경찰 자신이 스스로를 높이는구나! 그래 달라진 거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달라지셔서 참 좋겠다.”

학교를 가기 위해 또 다시 경찰서 앞을 지나가면서 힐긋 현판을 다시 처다 보았다. 그런데 “셨”이 아니라 ‘겠’ 이 아닌가? “경찰이 새롭게 달라지겠습니다.” 인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편견을 가지고 보니 ㄱ자가 ㅅ자로 보여 ‘셌’으로 읽고 나아가 ‘셨’으로 착각하여 인식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여 대상을 바라보면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대부분의 갈등과 분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갈등을 더 유리한 쪽으로 이 끌기 위해 본질을 꾸미려 한다. 하지만 솔직하지  못한 행동은 후에 상대방 뿐만 아니라 꾸민 사람에게도 삶의 고통으로 전이 될 수 있다.

 미국 쇠고기 협상이 시발점이 되어 많은 사람이 꾸며진 것에 대한 본질을 볼 수 있었고 지성인으로서의 행동을 하고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무엇이 더욱 중요한지를 자각하게 된 것이다. 삶에 있어서 결코 돈이 다가 아님을...
두눈이 표현하고 자 하는 작업 의도를 현 정권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지만 두눈의 작업보다 더욱 효과 적으로 하고 있다. 이러다 두눈이 하고자 하는 작업 개념을 수정해야 될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냐하면 많은 국민들이 있는 그대로를 볼 수 있게 하는 순수한 마음을 회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꾸며진 삶 속에 진실이 무엇인지를 현 정권은 체험을 통해 몸소 느끼게 해주고 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이 냄비근성이다. 이 냄비 근성에 대한 성찰을 꼭 해야 한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행동이 반짝 일어나다 사라져 버린다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경찰이 새롭게 달라진 것 처럼...
냄비근성이 어떻게 생겨 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남자라면 대부분 다녀왔을 군대 생활에서 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군 생활 중 어떤 사고가 터지면 사단에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지침이 각 부대로 전달되고 그 지침대로 행동했었다. 그 지침은 군 생활을 더욱 힘들고 불편하게 하는 규칙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처음엔 그 규칙을 따르다가 차츰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럽게 원래 생활했던 방식대로 원상 복구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현상이 몸에 배이게 된 것이 냄비근성의 한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디 우리 민족성은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냄비가 아니라 묵직한 가마솥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찾으리_가마솥,디지털 액자,00:01:19_100x100x25cm_2005/예술공간HUT설치


  두눈은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며 예술로써 홍익인간을 실천하고자 한다.
몇년동안 버려지는 손톱을 모아 작업 하면서 사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사회 문제의 근본적 원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 혹은 타인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성찰해야한다. 그래야지 만이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많은 국민들은 그 근본적 원인을 자각했고 바꾸기 위해 몸소 실천하고 있는반면 문제를 야시킨 사람들은 무엇인 문제인지 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이 참으로 안탑깝다. 문제의 근본 원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묵은 때를 벗겨 낼 때 알몸이 되어야 하듯, 숨겨왔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어야 한다.
한가지 분명한것은 이제는 더이상 국민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것이다. 진정한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이번 사태를 통해 몸소 깨달지 않았을까?



두눈_기준_손톱,랜즈_2x2x9.2cm _ 2005 / 2007년 11월 예술공간 HUT 설치

 

 “생사는 구름 같지만 생사의 무게는 구름 같지 않다.
구름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처럼 삶은 실체가 없으나
삶의 고통은 실체가 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삶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통은 거기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삶에서 원하는 것은 삶의 진실이 아니다.
위로다.
사람들은 삶의 진실과 대면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진실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로의 방식으로 삶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는다.
위로란 잠시 고통에 눈멀게 해주는 마약에 불과하다.”

강제윤   티베트 기행문


 

 그러하기에 우리는 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이겠지

                                                              두눈 생각



재미 이상의 그 무엇 factory


 

신고
0 0
1
블로그 이미지

당신의 마음이 예술입니다.

두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