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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wer of Flow
SON,HAE-JIN Solo Exhibition

2007.11.14~26 

Bandi



바늘과 자석의 오락적인 유희와 심리 사회적 확장

                                                                                 강종문(에술학)

 손혜진의 〈인력〉연작의 모든 형태는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작품에서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아크릴은 기계적으로 마감되어 있다. 그리고 바늘과 실 그리고 바늘을 끌어당겨서 실을 팽팽하게 하는 자석의 힘 사이의 평형상태는 줄타기와 같은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조금의 흐트러짐이나 균형의 이탈도 작품의 전체적인 균형을 무너뜨릴 것이다. 반면에 너무나 가볍고 밝고 투명한 아크릴과 그것을 부각시키는 조명은 작품이 엄격한 형식과 긴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밝고 명랑하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선사한다. 작품이 형식이 기계적이고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러한 명랑함을 유지하고 있다. 〈인력〉연작에서 작가는 바늘과 실, 그리고 바늘을 잡아당기는 자석의 힘이라는 단순한 소재를 작업의 일관성을 가지고 몇 가지 변주를 보여준다. 작업에서 바늘은 나침반에서와 같이 방향을 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자석의 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석을 향하여 일사불란하게 늘어선 바늘은 그대로 자석의 인력을 표시한다. 작품 구성의 요점은 이러하다. 실이 매어진 바늘을 자석이 당기고 있다. 그리고 그 실은 규칙적인 간격으로 배열되고 바늘은 자력의 영향권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붙어 있지도 않다. 작업의 구성은 중력으로 인해 아래로 떨어질 바늘을 공중에 떠 있게 하는 자석의 인력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인력〉이라는 중립적인 단어도 작품의 그러한 특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작품의 의미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해주기 보다는 단지 작품의 구성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인 자석의 힘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작업의 구성은 간단히 말해서 미니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구성은 미술의 재현적 심리 표현적 기능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진다. 바늘과 자석 사이의 긴장이 보는 이에게 어떤 심리적인 반향을 일으킬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작가의 내면에 있는 심리적 요소는 아니다. 자력이라는 단순한 물리현상을 나타내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인력〉연작은 어떠한 재현적 심리적 요소도 제거되었고 그러한 점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작품을 미니멀아트와 연관시키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작품의 미니멀적인 형식은 자력을 드러내기 위한 구성의 부차적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손혜진의 다른 작업에서는 그러한 미니멀한 형태를 완전히 버린다는 점을 보면 미니멀한 형태에 작가가 천착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인력〉 연작은 작업의 기계적인 마감이나 자력의 힘을 사용하는 점에서 키네틱 아트와 연관을 지을 수 있다. 다만 〈인력〉 연작을 키네틱 아트라고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연관성은 살펴볼 수 있고 또 그것은 작품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키네틱 아트에서 움직임의 요소와 같이 자력이라는 것은 예술에 기초지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작품에서 알아볼 수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다른 미술작품과 비교하거나 기억을 회상하거나 감정이입, 혹은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연결이 없이도 감상이 가능하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비밀스럽거나 어떤 해석을 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작품은 결과적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쉬운 것이 되었다. 그래서 작품 내의 조형 요소 외에 어떤 다른 것을 지시하거나 은유 혹은 상징의 방식으로 다른 것과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관람자의 생각과 관심은 작품 밖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작품의 분위기가 가볍고 밝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람자는 작품을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게 된다.



손혜진 _ 미친 질주_ 자석, 바늘, 실, 아크릴릭 _ 70×200×70㎝ _ 2000


그러나 작품이 여기에 머무르는 것은 위험하다. 〈인력〉 연작 같은 비구상 미술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작품에서 자력 외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얼마나 공허하겠는가? 우리가 작품을 가치 있는 어떤 것으로 상정하고 유심히 들여다보는 까닭은 그것이 기술적으로 정교하게 고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이 그것에 그칠 수는 없다. 이러한 기술적인 정교함을 작가가 표현하려고 하는 어떤 이념으로 승화시키지 못한다면 단지 오락적인 실험에 그칠 위험이 있다. 〈인력〉연작에서 부닥치는 문제는 작품이 오락적인 실험, 혹은 기계적인 정교함 외에 무엇을 전달할 수 있는가이다. 작품의 외연이 더 이상 확장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작업의 한계일 수 있다. 기계적으로 마감된 정사각형의 아크릴 판과 일정한 간격으로 매어진 실은 그 정교함이 탄성을 자아내지만 그러한 조형 요소들을 경탄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바늘과 실이라는 소재와 자석에 의한 긴장감은 오락적인 실험을 넘어서서 다른 무언가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작업은 공허해질 것이다.


손혜진의 작업에서 〈인력〉 연작 외의 어떤 작업은 심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해석이 필요한 지점으로 넘어갔다. 〈손(정확한 작품 제목필요)〉과 〈거주자 우선〉 같은 작업은 작품의 의미가 충분히 외연을 갖는 경우이다. 〈손〉같은 경우에 손의 형태로 모델링된 바늘은 직접적인 촉감적 감각을 시각적으로 부여한다. 이것은 인간 사이의 접촉 혹은 관계가 얼마나 아픈 것이 될 수 있는가를 나타낼 수 있다. “조심하세요. 나의 손을 잡으면 당신이 상처를 입을지도 몰라요”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거주자 우선〉은 주차구역을 나타내는 직사각형의 박스 선 안의 바닥에서 갈라진 틈 사이로 바늘을 세움으로써 밀집한 도시의 주거공간에서 주차를 위해 벌이는 날카로운 신경전을 재치 있게 묘사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바늘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심리적 사회적으로 의미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바늘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소재이다. 그것은 옷을 꿰매듯이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작업이 단지 자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외에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릴 무언가가 필요하다. 손혜진의 위트 있는 작업들은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갤러리 Bandi _ 서울시 종로구 사간동 36번지
(경복궁 옆 폴란드대사관 사이 골목 끝 부근)  
 02-734-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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