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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눈 프로젝트-솔직한 손톱? 있는 그대로를 보다!
                                              석사학위 청구전


2007. 11. 13  ~  19

예술공간 HUT

  오픈잔치  2007. 11. 13.  pm. 6 :30 ~ 10:00
 
후원 : 예술공간 HUT  협찬 : 유한킴벌리(주) 장인의 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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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적으로 손톱을 현 사회에 비추어 볼 때 존재 하지 않을 수 도 있는 그 무엇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한 가지 주제로 탐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지속적으로 손톱을 주 소재로 작업을 진행했다.
개념적으로 접근한 나의 작업은 학우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반론도 컸다.
그만하고 다른 작업을 해보라는 조언이 많았다. 
하지만....
두눈은 마치 과학자가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기 위해 실험 하듯 더욱 손톱에 빠져 들었다.
망각하고 있었던 참된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며...
 



 
두눈 _ 상반된 것 사이에서_가변 설치 _ 인터렉티브 기계-영상설치,낚싯줄,손톱,MDF_ 2006


이상과 현실 사이에 내가 선택한 이 길.......
   지금 이 순간 멈출 수도 뒤로 돌아 갈 수도 없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있기에 이 외줄에서 떨어 지지 않는다.
   저기 아무 것도 없는 저 곳으로 언제쯤 갈 수 있을까? 




두눈 _ 두눈변증법 _ 180 x 160 x 230(mm)_ 밥그릇, 지폐, 손톱, LED,투윈타이머_ 2007

두눈 _ 두눈변증법 _ 180 x 160 x 230(mm)_ 밥그릇, 지폐, 손톱, LED,투윈타이머_ 2007(부분)
 

에피소드
어떤 분이 질문을 했다.
“손톱으로 작업을 하시는 군요. 세균이 많을 텐데 어떻게 하나요?”
“아네, 알콜로 소독을 합니다”
“알콜로 세균 소독 잘 안될텐데...”
세균 감염에 대한 우려의 질문일 것이다. 종종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그래서 두눈은 이렇게 답했다.
“2년 반 이상을 손톱으로 작업해 오고 있습니다. 손톱 세균 때문에 병에 걸려 죽었다는 사람은 아직 못 들어 봤어요!“ 
 그리고 며칠 후 여동생의 결혼식이 있었다.
식이 끝난 후 봉투에 든 축의금을 꺼내어 백만 원씩 봉투에 다시 담는 일을 했다.
돈을 세다 갑자기 어떤 분이 손톱 세균에 대해 우려한 것처럼 누구의 손을 타고 이곳까지 왔는지 알 수 없는 돈이 불결하게 다가왔다.
장시간 수많은 돈을 만지게 되면 세균에 감염되지 않을까?
평소 아무 거리낌 없이 돈을 만지고 몸에 지니고 다닌 돈인데 세균 걱정하게 될 줄이야?
잠시 내손에 거처 가는, 내가 소유할 수 없는 돈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일까?
인간의 끈임 없는 욕망은 과학을 발전시키고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미래에는 사람의 진심까지도 아주 간단하게  얻거나 조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많은 돈을 가진 자만이 문명의 이기들을 활용 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것들을 가지기 위해 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밥그릇에 밥처럼 쌓여 있는 것은 자본주의 배설물이기도 한 폐기되기 위해 잘게 잘려진 수십 장의 만 원짜리 지폐이다. 밥을 먹기 위한 도구 숟가락은 수십 명이 모아준 잘린 손톱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투윈 타이머를 이용하여 외부와 내부의 조명을 번갈아 켜지도록 장치하였다. 밥처럼 쌓여 있는 돈은 얼핏 보면 꽉 차 보이지만 속은 비어 있다.  외부의 조명이 꺼지는 동시에 밥그릇 속을 비추는 내부 조명은 켜진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틈 사이로 들여다보면 중앙에 손톱 하나를 발견할 수 가 있다.
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잘려진 지폐, 이제 가장 더러운 것으로 보이는지, 아니면 평소 너무나도 소중히 여기고 가지고 싶어 했던 돈이기에 더럽다는 인식은 하지 못할수도 있을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이 아닌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실 된 삶의 가치를 두눈으로 보았음 한다.



 

두눈 _ 삼삼일 간의 복제 _  205 x 268 _ 손톱, 거울, 빽 라이트 _ 2005  
 
 


손톱은 끈임 없이 자라고 생산자에 의해 잘려짐으로써 비슷한 형태로 복제 된다. 거울에 붙어 있는 손톱은 33일간 기른 나의 손톱이다. 삼삼의 의미는 섹스를 상징하기도 한다. 손톱은 또한 감염주술( 어떤 부분에 대한 작용이 전체에 대해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는 신념이다)의 의미도 있다. 


 

 두눈 _ 내면노출 _ 870 x 400 x 1220  _ 인트렉티브 기계장치, 나무, 손톱,  물 _ 2006 (부분)

 
 
나는 어쩌면 노출 증 환자일지도…. 

 

두눈 _ 화이트 _ 300 x 210 x 180 l 생리대, 손톱, 아크릴, 천 _ 2007

 
에피소드

알고 지내던 여성이 화장실에 가야겠다면서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려 했다,

두눈은 그 옆에 서 처다 보고 있었다. 그 여자 분이 당황한말투로 하는 말

“뭘 봐!”

조그마한 천가 방을 꺼내어 화장실로 갔다. 난 눈치챌수 있었다.

아 생리 중이구나!

생리 중 여성의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는 생리대의 소중함 하지만 일회용으로서 폐기 처분되어야 할 운명은 우리 몸의 일부인 손톱과도 닮아 있다.
 묻은 혈은 고귀하고 신비한 생명잉태가 가능하다는 증거와 같다. 본인은 사회 내에서 예술가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도 고민하며, 손톱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 시대의 순수를 탐구해왔다. 생리대는 이러한 본인의 예술개념과 예술행위의 매개체로서 손톱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예술적 소재로 사용되었다.
 생리대 위에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손톱을 붙임으로서 마치 생리 혈처럼 표현하고 아크릴 박스에 넣어 보호했다. 여성의 기본적인 생리활동이자 생명의 증거임에도 불구하고 과거 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숨겨야 할 것으로 인식되어 때로는 수치스럽게까지 여겨지는 생리 혈은 인간이 물리적으로 한 행동의 증거인 손톱 밑에 낀 때와도 유사하다.
부조리한 것 혹은 억압되어 있던 것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 이 작품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자신들의 삶에 대한 긍정의 계기를 발견하였음 한다.


 

두눈 _ 나너 하지만 우리 _ 단채널 영상설치 DVD 00:03:06 , 화장지  _ 2005
 


버려지는 손톱을 방자유기에 모은다. 방자 유기는 독이나 농약이 있는 음식물이 닿으면 검게 변하여 해로운 성분이 있음을 드러나게 해준다. 에스컬레이터에 서있는 손톱기둥은 공동의 기준을 의미한다. 중심을 잃으면서 쓰러져 발로 차이게 되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지만 끝부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더 힘들게 시달림을 받는다. 그러다 다시 발로 차이면서 기준은 완전히 해체되면서 짓밟히게 된다.
본인이 영상에 등장하여 가식적인 눈물을 흘린다. 이는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지 못하고 연기를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애절함을 표현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순수함을 버려야 하는 상황과 직면하게 된다. 이것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이 때 양심과도 같은 또 다른 나에 대한 감정이 몹시 애처롭고 슬프다. 왜냐 하면 이런 사회를 나는 탓하면서도 그 속에서 함께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스스로에게 죄를 짖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부분에선 개신교가 말하는 “인간은 죄인이다.” 라는 말에 동의한다. 본인은 궁극적으로 표현 하려고 하는 것은 공영이며 이것은 순수해야지만 가능하다. 나, 너 우리의 손톱을 모으며




전시장 전경

내가 생각하는 순수

• 순수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솔직함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는 있는 그대로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표현했다. 하지만 획일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함으로써 눈치를 보며 솔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부모나, 사회가 원하는 수동적 삶을 살아간다. 그 결과 자아를 잃어버리게 되고 이것은 순수를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다.
• 순수는 인식 하려는 대상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 이전의 단계로 자신의 욕망대로 현상이나 사물을 왜곡 시켜 인식하지 않게 하는 마음이다. 설령 인식하려는 대상을 왜곡 시켰다면 왜 그 것을 왜곡 시켰는지에 대한 근본적 원인을 파악 할 수 있게 해준다. 순수는 있는 그대로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근원이다.


2005~2007 작업과정


손톱을 전시장에서 잘라 주신분
김정아님 김현경님 김해진님 김민근님 김은진님 김주연님 김희정님 김세경님 구기연님 권오진님 강민아님 권미예님 람  님 박지윤님 손해진님 성수진님 손금림님 쏭 쏭님 안세원님 이민수님 이지영님 이현주님 이유경님 윤한설님 이태훈님 이진경님 이봉이님 이승은님 윤한설님 원미리님 허지애님 조범상님 조아라님 전영주님 정아람님 정한나님 최현수님 최성렬님 최소영님 최선희님 추유리님 허종인님 함승수님 백사무엘님안드로메다님 이유상선생님 이수홍선생님 Shibata Kanzo, Sekiya Akihiro, Kitaoka Tatsuyuki, Kobayashi Fumiko

손톱을 모아주신 분
김윤경님 김문정님 김옥연님 김정경님 김백기님 김윤아님 김윤하님 김연중님 김지효님 김정윤님 김명수님 김남정님 김주현님 김남현님 김종우님 김민이님 권민규님 류영상님 문숙영님 박경목님 박경선님 박정흠님 배철호님 신정필님 신주숙님 송금숙님 오수연님 임동열님 이현숙님 이희진님 이경진님 이도영님 이재숙님 이상익님 이성환님 이상원님 이병호님 이은희님 이  경님 이민재님 이지숙님 이승윤님 윤혜림님 유맨슨님 윤종필님 조윤환님 조은혜님 전재철님 전미진님 정윤정님 정승진님 장성완님 장성훈님 전희경님 정소정님 조종성님 조민철님 정희정님 차재인님 차유진님 황귀휘님 허부영님 부산대학교조소과  류병학선생님 반이정선생님 정현선생님 최금수선생님 


순수를 표현해 주신분
 
허나영님_김민근님_유별라님_조은혜님


부대행사 : 작업 소통 잔치 2007. 11. 17. 늦은 6시

서성봉님 _ 주세정님 _ 양운철님 _ 최유경님 _ 김덕영님 _ 강수민님 _ 차재인님

참여작품보기 <-클릭



* 관람객 선물 증정

관람객 500명에게는 두눈프로젝트 도록(56p)과 화이트 생리대(2p)를 드리며 손톱을 모아 오시거나 전시장에서 잘라 주시는 분 200명에게는 <소망> 우표작품을 드립니다.  
 

 

  예술공간 헛_HUT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8-13  관람시간_01:00~09:00pm 약도
Tel. 02_6401_3613           club.cyworld.com/hut368



재미 이상의 그 무엇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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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HOMAS 유 작전

김도마 개인展

2007. 7. 7. ~ 22.

HUT






그는 쓰다가 버린 물건들 위에 쓰고, 그리고, 칠했다. 나는 그 제스쳐를 사유한다.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남들이 버린 물건에 ‘거처’을 마련해주느라 자기 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린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산하기 위해서 버리고 버리기 위해 생산해야 하는 우리의 만연한 일상의 경계를 구성한다. 희종愎?삶을 목격할 용기가 없는 이들은 삶을 연기한다. 무대(연극무대/화폭/좌대) 위가 아니라 삶에서 삶을 연기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비참한 삶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행이다. 살아서 이미 죽었던 것들에게는 메타포로서건 실제로서건 유작전은 불가능하다. 죽음을 연기하는 김도마의 메시지를 그래서 나는 자신은 인간으로서 살아있겠다는 오만한 욕망으로 읽는다. 낡고 어둡고 더러운 것들에 방점을 찍고 그것들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이되, 미화시키지 않는 것. 쓰레기에 접근하는 김도마에게는 생태학적인 명상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는 의미와 긍정으로 가는 평이한 공식을 경계한다. 나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윤리적인 질문을 감지하지만, 그는 문제를 던졌을 뿐 아직 그것에 대해 해답을 찾은 듯 허세를 부리지는 않는다. 단지 그는 제대로 죽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뿐이다.







 밖에 나갔다 온 자가 이방인처럼 바라본 이곳의 풍경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고, 김도마는 관음증과 노출증이 뒤얽혀 도대체 사그라들 줄 모르는 욕망의 천국에 대해 또 이야기한다. 그는 조롱하고 비아냥댄다. 사람은 없고 구멍들, 입과 항문만 있는 욕망의 왕국에는 삶이 없으므로 죽음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살아서 비존재였던 작가의 유작전에 몰려든 사람들은 죽은 뒤에 그에게 부여된 이름을 명성을 소비하러 미술관에 간다. 미술도 상품이라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모두가 일순간 잊어버릴 때 미술은 예술이 될 수 있다. 살아서 이미 유명했으므로 허깨비같은 표정을 짓게 된 와홀의 분열은 한국에 오면 말끔히 세탁된다. 자본주의적 권태와 우울을 자본주의적 쾌락과 행복의 이미지와 뒤섞었던 와홀 앞에서 사람들은 이미 알려지고 소유된 와홀을 보고 간다. 소통없는 만남은 평화롭다. 소통하려는 욕망을 가진 자 만이 소통의 실패와 공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와홀이 울고 있다고 생각한 김도마의 애틋한 마음은 누구건 감히 ‘예술가’ 행세를 해도 너그러운 한국 사회에 대한 비아냥과 분노와 함께 한다. 이번 전시에 그는 사랑과 혐오를 함께 진열하고 있다.







 삶을 연기하는 이유나 죽음을 연기하는 이유 모두 알고 있는 것들이다. 자의식이 없는 자의 연기는 폭력이며 공허함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심지어 자신을 병들게 한다. 김도마는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자의식이 있는 자의 연기는 비극이며 공허함이다. 그는 이 세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망각할 수 없는 자신을 걸머지고 계속 가거나 과도한 연기의 피로로 결국 소진되고 말 것이다. 죽음을 연기하는 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무의미한 삶들을 무대 위에서 살해하면서 파국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을 것 같은 삶에 겨우 매달린 의미의 잔해를 붙들고 그는 삶을 봐달라고 요구한다. 김도마는 고전적인 의미의 작가, 총체성에 대한 사유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더니스트이다. 겨우 존재하는 것들을 호출해내고, 그것들에 자신의 존재를 덧붙이고, 이곳의 비극적 타락을 목격하는 자신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거만한’ 태도는 물론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작전의 ‘형식’을 빌어, 영혼이 깃든 상품 다시 말해서 물화된 삶과 물화된 전시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태도는 자못 신선하다.







전시 팜플릿의 흑백 사진을 바라보면 의도적으로 한 부분만이 컬러이다. 물감을 닦는데 사용한 것 같은 헝겊이 슬쩍 좌대 아래 걸려 있다. 유작전을 경유해 다시 살아있으려는 강렬한 욕망이 읽힌다. 소비되어져야 하는 상품으로서의 작품과 전시되어져야 하는 소통에의 의지로서의 작품 사이에서 김도마는 명민하게 고민의 방식을 선택한다. 나는 그가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삶과 믿음과 의미의 대행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읽는다. 그는 다행히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신분이다. 그는 떠돌이의 신화로 자신의 거처를 보호하는 평범한 행운은 타고 나지 않았다. 작살로 고기를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이나 세계를 유랑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두었기에 그는 무책임하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의 위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광목 천에 스탬프로 찍은 ‘퍼니퍼니’ 게임 앞에서, 미국이 미국에게 저지른, 자본주의의 뫼비우스의 띄 앞에서 재밌는 일이라고 짐짓 가볍고 즐거운 듯 제스쳐를 취하는 김도마의 ‘유작전’을 잇는 전시의 이름이 ‘탄생전’ - 조만간 열리게 될 전시 - 이 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작가는 아니다. 대학시절 부터의 작업과 이번 전시를 위해 기획한 작업을 한데 망라한 이번 ‘김도마 유 작전’은 소비와 생산의 합류지점에 서버린 예술에 대한 비판적 대응방식으로서, 이제 바야흐로 살아볼 채비를 하는 젊은 작가의 오만한 고백으로서, 대면할 자격을 갖춘 듯하다. ■ 양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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