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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HOMAS 유 작전

실천예술가두눈 2007. 7. 2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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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THOMAS 유 작전

김도마 개인展

2007. 7. 7. ~ 22.

HUT






그는 쓰다가 버린 물건들 위에 쓰고, 그리고, 칠했다. 나는 그 제스쳐를 사유한다. 버려지는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남들이 버린 물건에 ‘거처’을 마련해주느라 자기 집을 쓰레기장으로 만들어버린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산하기 위해서 버리고 버리기 위해 생산해야 하는 우리의 만연한 일상의 경계를 구성한다. 희종愎?삶을 목격할 용기가 없는 이들은 삶을 연기한다. 무대(연극무대/화폭/좌대) 위가 아니라 삶에서 삶을 연기하는 것만큼 지루하고 비참한 삶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행이다. 살아서 이미 죽었던 것들에게는 메타포로서건 실제로서건 유작전은 불가능하다. 죽음을 연기하는 김도마의 메시지를 그래서 나는 자신은 인간으로서 살아있겠다는 오만한 욕망으로 읽는다. 낡고 어둡고 더러운 것들에 방점을 찍고 그것들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이되, 미화시키지 않는 것. 쓰레기에 접근하는 김도마에게는 생태학적인 명상법은 작동하지 않는다. 그는 의미와 긍정으로 가는 평이한 공식을 경계한다. 나는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윤리적인 질문을 감지하지만, 그는 문제를 던졌을 뿐 아직 그것에 대해 해답을 찾은 듯 허세를 부리지는 않는다. 단지 그는 제대로 죽기 위해서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고 반문할 뿐이다.







 밖에 나갔다 온 자가 이방인처럼 바라본 이곳의 풍경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것들이고, 김도마는 관음증과 노출증이 뒤얽혀 도대체 사그라들 줄 모르는 욕망의 천국에 대해 또 이야기한다. 그는 조롱하고 비아냥댄다. 사람은 없고 구멍들, 입과 항문만 있는 욕망의 왕국에는 삶이 없으므로 죽음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살아서 비존재였던 작가의 유작전에 몰려든 사람들은 죽은 뒤에 그에게 부여된 이름을 명성을 소비하러 미술관에 간다. 미술도 상품이라는 모두가 아는 사실을 모두가 일순간 잊어버릴 때 미술은 예술이 될 수 있다. 살아서 이미 유명했으므로 허깨비같은 표정을 짓게 된 와홀의 분열은 한국에 오면 말끔히 세탁된다. 자본주의적 권태와 우울을 자본주의적 쾌락과 행복의 이미지와 뒤섞었던 와홀 앞에서 사람들은 이미 알려지고 소유된 와홀을 보고 간다. 소통없는 만남은 평화롭다. 소통하려는 욕망을 가진 자 만이 소통의 실패와 공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와홀이 울고 있다고 생각한 김도마의 애틋한 마음은 누구건 감히 ‘예술가’ 행세를 해도 너그러운 한국 사회에 대한 비아냥과 분노와 함께 한다. 이번 전시에 그는 사랑과 혐오를 함께 진열하고 있다.







 삶을 연기하는 이유나 죽음을 연기하는 이유 모두 알고 있는 것들이다. 자의식이 없는 자의 연기는 폭력이며 공허함이다. 그는 다른 사람과 심지어 자신을 병들게 한다. 김도마는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너무 많다고 불평한다. 자의식이 있는 자의 연기는 비극이며 공허함이다. 그는 이 세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망각할 수 없는 자신을 걸머지고 계속 가거나 과도한 연기의 피로로 결국 소진되고 말 것이다. 죽음을 연기하는 자는 삶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다. 무의미한 삶들을 무대 위에서 살해하면서 파국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을 것 같은 삶에 겨우 매달린 의미의 잔해를 붙들고 그는 삶을 봐달라고 요구한다. 김도마는 고전적인 의미의 작가, 총체성에 대한 사유를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모더니스트이다. 겨우 존재하는 것들을 호출해내고, 그것들에 자신의 존재를 덧붙이고, 이곳의 비극적 타락을 목격하는 자신을 드러내고, 그럼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의 존재감을 강화하려는 ‘거만한’ 태도는 물론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작전의 ‘형식’을 빌어, 영혼이 깃든 상품 다시 말해서 물화된 삶과 물화된 전시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발화하는 태도는 자못 신선하다.







전시 팜플릿의 흑백 사진을 바라보면 의도적으로 한 부분만이 컬러이다. 물감을 닦는데 사용한 것 같은 헝겊이 슬쩍 좌대 아래 걸려 있다. 유작전을 경유해 다시 살아있으려는 강렬한 욕망이 읽힌다. 소비되어져야 하는 상품으로서의 작품과 전시되어져야 하는 소통에의 의지로서의 작품 사이에서 김도마는 명민하게 고민의 방식을 선택한다. 나는 그가 그리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삶과 믿음과 의미의 대행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읽는다. 그는 다행히 안과 밖을 넘나드는 신분이다. 그는 떠돌이의 신화로 자신의 거처를 보호하는 평범한 행운은 타고 나지 않았다. 작살로 고기를 잡을 줄 아는 사람들이나 세계를 유랑하는 사람들을 친구로 두었기에 그는 무책임하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의 위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광목 천에 스탬프로 찍은 ‘퍼니퍼니’ 게임 앞에서, 미국이 미국에게 저지른, 자본주의의 뫼비우스의 띄 앞에서 재밌는 일이라고 짐짓 가볍고 즐거운 듯 제스쳐를 취하는 김도마의 ‘유작전’을 잇는 전시의 이름이 ‘탄생전’ - 조만간 열리게 될 전시 - 이 될 리는 없을 것이다. 그는 내가 보기에는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작가는 아니다. 대학시절 부터의 작업과 이번 전시를 위해 기획한 작업을 한데 망라한 이번 ‘김도마 유 작전’은 소비와 생산의 합류지점에 서버린 예술에 대한 비판적 대응방식으로서, 이제 바야흐로 살아볼 채비를 하는 젊은 작가의 오만한 고백으로서, 대면할 자격을 갖춘 듯하다. ■ 양효실



예술공간 헛_HUT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8-13  관람시간_01:00~09:00pm 약도
Tel. 02_6401_3613          
club.cyworld.com/hut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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