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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sm in mind - 정태전 개인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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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ism in mind - 정태전 개인展

실천예술가두눈 2007. 11. 26. 19:46

The prism in mind

정태전 개인展

2007.11.21~27

큐브스페이스



정태전_Bautiful life_미쥼 보드, 밀러 아크릴_650×650×150mm_2007


The prism in mind

그는 종이를 칼로 오리는 방법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종이에 이미지를 그리고 화면의 중심에서 시작된 나선형의 곡선을 따라 형태가 드러나도록 칼로 도려낸다. 그는 이런 과정을 거쳐 종이 부조를 만드는데 이때 완성된 결과물은 표면만 존재할 뿐인 텅 빈 입체이다. 이러한 기법이 「자화상」이나 「Falling」에서 나타내는 효과는 열망하던 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던 것들이 순식간에 모두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느낌, 이제 시간은 정지하고 오로지 혼자일 뿐인 '나' 라는 존재가 한없이 깊은 절망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듯 한 느낌이다. 이 작품들은 특히 아무런 과정을 거치치 않고 흰 종이 그대로를 사용한 탓인지 마치 손을 대면 바스러질 것만 같다. 작가의 얼굴을 소재로 한 「Face」는 누구라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이미지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지럽고 복잡하다. 마치 만화경을 통해 들여다보는 이미지 같지만 신기하고 재미있기보다는 심란하고 혼돈스럽기만 하다. 이렇듯 작가 자신의 외면 형상을 그대로 사용한 작품들에는 혼돈과 자기연민, 집착이 공존한다. 또한 현란한 형광색 바탕과 대조적으로 부서지고 흩어지는 하얀 해골들을 묘사한 「두개골」 시리즈에서 그는 바니타스의 아이콘을 차용하여 욕망의 헛되고 헛됨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바로크 시대 정물화에서 해골은 권력도 아름다움도 부도 지식도 인간의 생명이 사라지고 나면 모두 덧없는 것, 죽음과 허무는 늘 우리 곁에 있으니 그 점을 인식하고 현재에 충실히, 욕심을 버리고 살아가라는 상징이었다.

 

정태전_The prism in mind-The Heart_미쥼 보드, 밀러 아크릴_1050×850×400_2007




정태전_The prism in mind-The Heart_미쥼 보드, 밀러 아크릴_1050×850×400(부분)_2007





정태전_Falling_미쥼 보드, 밀러 아크릴_810×810×420_2007


그러나 전술했듯이 정태전에게 욕망은 다스려 잠재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에게 욕망은 인간이 살아 있다는 증거, 즉 숨을 쉰다는 것, 심장이 뛰고 사유기관이 활동한다는 것이면서 더불어 생명이 있는 동안 힘을 다해 유지해야 할 호흡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거대한 「허파」를 만들게 됐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그는 내면의 감성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장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대상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면서 다중적인 의미체로 변모시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점이다. 직접 염색한 실로 촘촘하게 감아 제작한 이 작품은 허파라는 형태를 인식하기도 전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형태보다 화려한 색채가 먼저 우리의 시각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허파」의 빛깔은 내면의 분광기를 통해 투사된 거대한 욕망의 스펙트럼처럼 보인다. 인간의 내장이란 것이 다소 충격적인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니 이렇듯 우리의 안목은 현혹되기 쉬운 것이다. 「허파」, 「심장」, 「뇌」로 이어지는 내장기관을 소재로 한 작업에는 다채로운 색상들의 대비가 눈에 띄는데 이러한 색상들은 역시 다양한 욕망을 함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 역시 중심은 항상 텅 비어있다. 그는 왜 긍정적이고 건강한 욕망으로 충만한 신체를 텅 빈 것으로 만드는 것일까?



정태전_The prism in mind-Breathe01_PVC, 염색실_2300×1250×2200_2007





그의 작품들은 육체와 정신, 신체의 외면과 내면, 욕망과 그 덧없음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색(色)과 공(空)을 두루 넘나들며 그 사이를 맴도는 것처럼 보인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누구나 자신의 본질을 깨닫고 나서 보면 이 세상 만물이 모두 그 본질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이분법적 분별은 모두 사라진다. 허파 형태의 골조에 수백, 수천 바퀴로 실을 감는 행위나 종이를 나선형의 곡선을 따라 돌아가며 수십 수백 겹으로 도려내는 작업은 감고 돌린다는 행위적 유사성 외에도 속히 끝을 보기가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태전은 우스갯소리처럼 말했지만 자신의 제작 기법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반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작업이다 보니 계속 하다보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마치 3천배(三千拜)를 수행하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가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욕망으로 충만한 텅 빈 신체이다. 자유롭게 욕망을 추구하지만 거기에 빠지거나 연연해서는 안되고 욕망이 그를 내리누르거나 가두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필연적으로 비어있어야만 한다. 현상계의 부정을 통해 그가 찾고자 하는 궁극적인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는 그 공간을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생명력이 넘치는 생성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_ 이주원


큐브스페이스 _ 서울 종로구 관훈동 37번지 수도약국 2층
02_720_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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