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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디다회퍼와 압바스키아로스타미 작업 비교     

칸디다회퍼

칸디다회퍼의 작업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듯 스케일이 커서 마치 그 공간에 빨려 들어가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텅빈 공간을 탐색하는 느낌으로 부분 부분을 감상하였다. 칸디다회퍼는 여성작가여서 그런지 작업이 나를 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칸디다회퍼는 공공도서관, 오페라 극장, 박물관 등 공적인 공간을 원근이 잘 들어 나도록 정면 혹은 사선 구도로 보여 주었고 인간을 배제시킴으로써 실용적인 공간을 미학적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였다. 두눈이 느끼기엔 반복의 미와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여성적 관점에서 외부가 아니라 내부를 드러내고 있는 또한 두눈의 작업에서 생각하고 있는 공공의 것을 드러내는 것 같다. 사적인 것 보다는 공적인 것을 중요시 여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철저하게 인간이 만들어낸 즉 인공적 공간이다.
 


압바스키아로스타미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작업은 칸디다회퍼와 시각적인 것부터 확연히 차이가 낮다. 칸디다회퍼는 서양의 느낌 이라면 압바스키아로스타미는 동양적 관점과 느낌으로 작업을 표현하였다. 소재는 자연이었고 흑백사진으로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 하다. 흰 눈은 여백의 미로 느껴진다. 자연 앞에 외소 한 인간, 자연에 대한 숭고미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 속에 보잘것없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었다.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작업은 자연에 인공적인 길이 나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마도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칸디다회퍼와는 다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 보단 멀리서 3자로써 관조하고 있는 시점이다.
   


두 작가의 작업을 볼 땐 극단적인 생각인지 몰라도 동양적 느낌의 작업과 서양적 느낌의 작업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아주 복잡하고 개념 설명을 들어야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동양적 작업은 그냥 느낌으로 와 닫았다. 즉 말이 필요 없었다. 2005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대학원 전시회가 있었는데 부대 행사로 세미나를 했었다. 가징 이슈가 된 것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글을 쓸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에 발끈한 작가가 있었다. 글 적는 것은 평론가가 하는 것이고 마음으로 느껴야지 왜 말로써 설명하기를 강요하느냐? 이런 것이었다. 칸디다회퍼 와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작업에서 볼수 있듯이 말이 필요한 작업과 그렇지 않는 작업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작업에 논리적으로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은 현시대 작가라면 꼭 갖추어야 할 필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또한가지 생각나는 것이 <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동방에서 온 늙은 현자는 현상을 통해 사유할 터이지만, 반면에 철학자는 개념을 창안하고 그 개념을 사유...” 라는 글이 떠오른다. 즉 동양은 직관적 사유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논리적인 이성적인 것을 배제 하고도 압바스키아로스타미의 작업처럼 와 닫는 무엇이 있다. 하지만 그 반면에 식상하다는 느낌도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두가지 관점을 적적이 혼합하는 것이 가장좋을 것이다. 동양이 부족한 부분을 빨리 인식하고 대처해나가자!  동양의 좋은 것들을 잊지 말고 말이다.  서양의 개념적 사고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지만 동양의 자연에 대한 사고는 인간이라면 끊임 없이 사유할 가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 이상의 그 무엇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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