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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담론 토론회

 표절, 자본 논리 예술 윤리 사이



아래 "말의 투지"를 클릭하면 각 발제문을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2016년 5월 13일 14:10~18:09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주최 : 자율공공실천회의(준), 리얼리스트100 

후 원 : 서울문화재단

 


ㅇ 토론좌장 : 김종길 미술평론가. 자공실 학술비평위원회

자본시장이 크게 확장되면서 자본이 예술을 잠식하고 예술은 자본에 종속되는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자본의 논리가 비평의 논리를 무색케 한다. 잘 팔리는 것이 곧 예술의 공동선이요, 예술성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 과정에서 ‘표절’은 예술가의 윤리 따위를 지워버린다. 상업 권력의 뒤에서 ‘표절’을 ‘모방미학’이라 자위하며 양심선언하지 않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다. 오늘 한국의 예술계는 이런 죽은 예술의 그림자가 짙다. 예술의 창조성을 위한 예술가의 고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또한 예술계 내부의 성찰적 담론이 필요한 지점이다. ‘자율공공실천회의(준)’와 ‘리얼리스트100’이 자본의 논리와 예술의 윤리 사이를 비집고 썩은 ‘표절’의 그림자를 해체하고자 한다.

 


인사말: 이태호 자율공공실천회의(준) 공동준비위원장



인사말: 정세훈 리얼리스트100 대표

 


말의 투지(발제): 오창은 문학평론가  
창조성과 표절의 경계 위에 선 비평증언자들 - 비평논쟁을 통해 본 신경숙 표절 사건의 역사적 성찰

 

신경숙 표절 논쟁, 그 이후

권력은 일상 속에 있다. 숨어 있는 것이 아니라 안 보일 뿐이다. 다만, 예외적 사건이 발생하면, 권력의 작동 방식이 노출된다. 다른 관점으로 일상을 바라보면 권력이 보인다. 그렇기에 혁명적 경험은 항상 가치가 있다. 혁명은 , 이상한데? 왜 그렇지?’라는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이 때가 일상이 범상치 않게 보이는 순간이다. 일상의 질서가 격렬하게 뒤흔들리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바로 혁명적 사건이다. 권력의 질서는 낯선 질서와 대비될 때 명료해진다.

지난 2015625일에 있었던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는 신경숙 표절 논란으로 한국사회가 들썩이던 때였다. 한국 근현대문학사에 기록될 만큼 신경숙 표절 사건은 크게 받아들여졌다. 뜨겁게 달아오른 불판에는 물을 부으면 강하게 튀어오른다. 그 불판에는 어떤 것을 끼얹어도 큰 소리를 내면 요동치기 마련이다. 이 날 문학동네 편집위원 일동명의로 문학동네 홈페이지에 게재한 글은 불판 위의 뿌려진 기름처럼 격렬했다.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응분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공개 좌담회를 제안했다. 독자와 좌담 참석자에게 알리는 이 글에서 문학동네 편집위원들은 문학권력에 실체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또 어떻게 개선되어야 할 것인지를 .......

 

 


 


말의 투지(발제): 김지연 미술평론가 

미술 유통 시스템, 표절의 효용성 그리고 창작 윤리
 


동일한/유사한, 기법, 도상, 재료, 개념을 다루는 시각예술계 작가들 사이에서 표절 논쟁은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에도 몇 가지 관련 이슈가 현재진행형으로 논의되는 중이다. 본 발제에서는 표절 논쟁이 불거질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모방, 패러디 등에 대한 원론적인 분석은 배제하고, 작가 자신이 표절에 대해 언급한 동시대 일련의 사례 설명에 집중하겠다. 그러나 논쟁 중인 작업들이 표절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역시 유보한다. 진실 공방에 합류하는 것보다는 여러 사례를 통해, 스타일을 독점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와 그것을 흔드는 상황을 살펴보면서 표절 논쟁을 관통하는 문제가 무엇인지에 다가가 보는 것이 본 발제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사례 1

1991년부터 꾸준히 자개를 붙이는 작업을 해온 김유선 작가는 자신의 작업과 유사한 공예가 김영준의 작업을 보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가구 장식품으로 쓰였던 나전칠기 전통의 모든 형식을 과감히 깨고, 자개의 물질적 특성에.....

 

http://agg21.cdn1.cafe24.com/img/dunun/20160513/8.jpg

 

사례 3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손몽주는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박정현 작가의 개인전 출품작 가운데 <disturbing>에 대해 표절 문제를 제기했다. 고무줄, 고무 밴드를 벽면에 고정시켜 공간을 분할하는 방식이 너무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박정현은 표절 의혹을 부인했다. 그녀는 손 작가의 작품을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 표절 논란이 제기되어 당황스럽다. 여러 번 심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작품 아이디어로 5개를 제출했고 이 가운데 선택된 것이다. 현대 미술에서는 같은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고무줄을 이용해 설치 작업을 하다 보면 표현 방법의 한계 때문에 유사성을 띨 수 있다. 하지만 개념적으로 손 작가의 작품과 완전히 다른 것으로 표절이 아니다. 작가 인생이 걸린 만큼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겠다는....



비평은 표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 표절과 비평의 과제

지난 해 신경숙 표절 사건은 문단의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폭탄이었다. 논란의 계기가 되었던 이응준의 기고문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자체가 신경숙의 <전설>에서 문제의 구절이 미시아 유키오의 <우국>의 번역문을 표절했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문제가 되었던 작품은 작가의 신작이 아니었고 이미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던 작품이다. 또 이 작품 외에도 신경숙에 대한 표절 논란은 이미 몇 차례 있어왔던 터였다. 장문의 기고문에서 필자의 많은 논의는 왜 문단이 신경숙의 표절에 침묵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직접 작가와 작품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조경란의 <>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는 또 다른 표절 사례에 대한 침묵을 함께 질타한다.

지난 해 신경숙 표절 사건이 빅이슈가 되었던 것은 인기 작가의 표절사건이라는 점만이 아니었다. 대중적 관심은 그에서 폭발했지만,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 역시 이 사건의 파장을 일파만파로 키웠다. 문학동네, 창작과비평 등 출판사와 출판사가 발행하는 문학지, 그 문학지 편집위원과 주요 필자를 독점하고 있는 평론가로 이루어진 문학권력에 대한 비판이 문학계에서 터져나왔다. 결국 출판사의 상업주의에 작가도 비평가도 종속되어 있다는 비판이었다. 신경숙 표절 사건은 그 출발은 작가 윤리였지만 논쟁의 전개는 비평의 윤리였던 셈이다.

그런데 한편 이번 논란은 곤혹스러운.......

 


말나눔



말나눔
토론자: 김재엽 연출가, 드림플레이테제21

 


말나눔

토론자: 홍지석 미술평론가



말나눔

토론자: 이성혁 문학평론가



말나눔

이태호 자율공공실천회의(준) 공동준비위원장



말나눔
김준기 미술평론가

 


말 나눔 

조정환 다중지성의 정원 대표

[표절, 자본의 논리와 예술의 윤리 사이] 소감

1. 문학예술 비평계의 진보파 혹은 좌파가 그 내용상 보수파나 우파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표절' 개념을 자본과 권력 비판의 주제로 삼게 된 것은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사건이며 징후적인 현상이다. 과거에 문학예술에 대한 '탄압'이나 '검열'을 비판하고 '자유'를 옹호함으로써 권력에 맞선던 문학예술 좌파가 사적 소유의 목소리인 '표절'을 비판하는 것으로 권력에 맞서게 된 것은, 자본의 노동착취를 비판하던 노동운동이 정리해고에 맞서 자본에 의한 노동의 사용, 즉 고용를 옹호하는 운동으로 전환된 것과 조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로부터 진보와 보수가 뒤섞이고 심지어 자리를 바꾸는 전환이 일어난다. 왜 이렇게 되는....... http://waam.net/xe/blog/461120



이태호 김재엽 김소연 이성혁 최혜미 홍지석 오창은 김지연 조정환 김준기 김종길 

 


서교예술실험센터_서울 마포구 잔다리로6길 33 



덧: 신용구작가 포퍼먼스 관련 대기업 광고 도용에 관한

우리나라에서 예술인으로 산다는 비애

- sk브로드밴드의 ‘미로 속의 실타래와 현의 변주’ 작품 도용에 대한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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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금요일에 "표절" 관련 심층 토론이 열립니다. 문학 연극 미술의 오창은 김소연 김지연 세 평론가가 발제하고, 김종길 사회로 이성혁 김재혁 홍지석 등이 토론합니다. 장르 간의 차이와 공유지점을 짚으며 예술의 윤리를 생각해보는 자리입니다.


<현장+담론 토론회 : 표절, 자본의 논리와 예술의 윤리 사이>
2016. 5. 13(금) 14:00~17:30,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주최 : 자율공공실천회의(준), 리얼리스트100 

후 원 : 서울문화재단


자본시장이 크게 확장되면서 자본이 예술을 잠식하고 예술은 자본에 종속되는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자본의 논리가 비평의 논리를 무색케 한다. 잘 팔리는 것이 곧 예술의 공동선이요, 예술성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 과정에서 ‘표절’은 예술가의 윤리 따위를 지워버린다. 상업 권력의 뒤에서 ‘표절’을 ‘모방미학’이라 자위하며 양심선언하지 않는 예술은 죽은 예술이다. 오늘 한국의 예술계는 이런 죽은 예술의 그림자가 짙다. 예술의 창조성을 위한 예술가의 고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고 또한 예술계 내부의 성찰적 담론이 필요한 지점이다. ‘자율공공실천회의(준)’와 ‘리얼리스트100’이 자본의 논리와 예술의 윤리 사이를 비집고 썩은 ‘표절’의 그림자를 해체하고자 한다.

ㅇ 오창은(문학평론가), 창조성과 표절의 경계 위에 선 비평증언자들 - 비평논쟁을 통해 본 신경숙 표절 사건의 역사적 성찰
ㅇ 김지연(미술평론가), 미술 유통 시스템, 표절의 효용성 그리고 창작 윤리
ㅇ 김소연(연극평론가), 비평은 표절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 표절과 비평의 과제

ㅇ 토론좌장 : 김종길(미술평론가. 자공실 학술비평위원회)
ㅇ 토론자 : 홍지석(미술평론가), 이성혁(문학평론가), 김재엽(연출가, 드림플레이테제21)


ps: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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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철 서태지와 아이들로 문화대통령이 되다
 록 음악에 심취했던 정현철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베이스 연주자로 활동, 신대철에 눈에 띄어 시나위로 데뷔한다. 시나위 시절 대한민국에서 생소했던 미디, 흑인 음악을 접하게 되고 이러한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흑인 댄스 음악을 듣는다고 멤버들로부터 놀림까지 받음) 시나위는 4집 활동 중 해체되고(후에 다시 부활함) 정현철은 미디, 흑인 음악에 록 사운드를 접목시켜 <난 알아요>와 미디음악계열의 <환상 속의 그대>를 만들어 댄스 그룹으로 활동하고자 했다. 정현철은 댄서 양현석에게 자신이 만든 데모 테임을 주며 한 팀으로 활동하자고 제의했고 양현석은 선배인 이주노에게 정현철의 음악을 들려주게 된다. 이주노는 정현철의 음악에 매료되어 자신도 함께 팀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양현석을 통해 이주노는 서태지를 만나게 된다.
 이주노는 서태지에 대한 첫 만남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옷은 추리닝에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오며 검은 뿔테 안경을 낀 미소년 같은 이미지라 무대에 선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았고 댄스 음악을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가 만든 강렬한 음악에 매료되었기에 외모로부터 시작된 선입견은 접어두고 한팀이 되고자 했단다.
 정현철(서태지)이 승낙함으로써 맴버 구성이 완료된다. 맏형 이였던 이주노는 태지 보이스로 그룹명을 정하고 싶었지만, 곡을 만드는 실력이 더 뛰어났던 정현철의 뜻에 따라 ‘서태지와 아이들’로 그룹명을 정한다.



출처 : 파워제너레이터 서태지

( 첫 방송 출연을 앞두고 댄싱 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서태지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야 했는데 한꺼번에 자르면 적응하지 못할까 봐 이주노는 시간의 틈을 두고 단계적으로 서태지의 머리카락을 짧게 잘라 주었다고 한다. 참고 :  나는 영원한 춤꾼이고 싶다. / 이주노의 자서전)


 타이틀 곡 <난 알아요>를 시작으로 발매하는 앨범마다 크게 성공을 거둔다. 거듭 장르 간의 접목을 시도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록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4집에서는 밴드 형태로도 활동한다. 새로운 색깔의 음악을 매번 발표하며 대중을 이끌었던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이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게 되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4집 타이틀곡 컴백 홈이 표절 시비에 휘말리게 되고 ‘창작의 고통’ 이 해체의 이유라 말하며 은퇴 선언을 한다. 차후 서태지는 이미 4집 활동 까지만 하고 해체할 것임을 멤버들과 미리 결정해 두었다고 밝혔다. 춤꾼 양현석, 이주노가 드럼과 베이스기타를 연주한 것이 어쩌면 마지막 활동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벗어나 완전한 록 사운드로 서태지는 은퇴선언을 뒤집고 팬들에게 돌아온다. 두눈이 연기에 더 충실하고 있는 신성우를 여전히 좋아하는 것처럼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에 매료된 팬들은 서태지의 영원한 마니아로 서태지를 지켜주고 있다. (시나위 신대철은 이러한 서태지의 컴백을 예견 했는지 서태지를 비판하는 <은퇴선언> 앨범을 발표한다.) 어찌 되었던 서태지는 록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은 대단하지 않은가? 


장르 간의 접목을 통한 마니아 형성
암울 했던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끝이 나고 급속한 경제 발전과 더불어 올림픽까지 치러낸 시기에 변화없는 오리지널 록으로는 주요한 문화소비층인 젊은 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을 것이다. 서태지가 록 뮤지션에서 댄스 가수로 전향하지 않았다면 ‘문화 대통령’ 이라는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라 단언한다. 서태지 음악에 이미 빠져버린 팬들은 록이라는 음악장르를 자연스럽게 소화했고 이들의 지원에 힘입어 더 많은 대중에게 록을 접해 볼 수 있게 했다. 이러한 점을 두눈은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눈은 현시대 미술 발전을 위한 첫 번째 실천으로 생활 속 전시를 기획할 당시 동료에게 <난 알아요> 와 같이 록과 댄스를 접목 시켜 마니아를 형성한 서태지를 예로 들면서 기존의 형식에서 벗어나 (미술 안에서의 미술) 미술이 생활과 접목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창진 _ 키스미 달링 _  실재크기 _ 2002

 (현시대 미술 발전을 위한 현미발모의 그 첫 번째 실천 '가라사니 진열창'전 때 가징 인기가 좋았던 작품)

난알아요 표절일까? 아닐까?


             

출처 : youtube-Milli Vanilli


 은퇴 당시 표절 시비가 있긴 했지만 록음악을 기반으로 항상 새로운 음악을 선보였던 서태지를 좋은 뮤지션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태지의 신작 모아이 앨범이 나온 후 또다시 인터넷을 통해 표절 시비가 있었고 표절 시비에 대한 글을 보던 중 현재의 서태지를 있게 만든 <난 알아요>또한 너무나도 유사한 곡이 있다는 사실에 창작의 고통에 못 이겨 은퇴한다던 그에게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며 두눈은 듣자마자 ‘표절이다.’라고 판단해 버렸다.
 두눈이 자주 방문했던 영화 관련 카페에 게시판지기를 맡고 있는 분이 ‘서태지 컴백 스페셜’ 동영상을 올려 두었고 그 글에 두눈은 “<난 알아요> 란 노래가 표절이라는 것에 너무 실망했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았다. 차 후 확인해 보니 댓글이 삭제되어 있었다. 그래서 왜 지웠는지를 물어 보았는데 그 댓글마저 지워졌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은 불쾌감에 서태지가 표절했다는 내용의 글을 왜 지우냐는 항의성 글을 올렸다. 카페 지기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혹시 지운 운영자가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했다. 이 게시물을 본 카페내의 서태지 팬과 논쟁이 발생하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두눈은 <난 알아요>에 대해 다시 알아보니 표절로 판명된 곡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두눈이 듣기엔 표절 같다고 정정한다고 댓글을 달았다. (황당하게도 서태지에 관한 두눈의 댓글을 지운 운영자는 없다고 했다.)
  <난 알아요>는 < girl you know it's true >곡과 유사하지만 표절로 판정된 곡은 아니다. 최근 다시 들어 보니 비슷한 느낌은 지울수 없지만 표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절로 판정되려면 90년대 들어와 저작권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 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그러니까 표절일 지라도 저작권을 가진 자가 고소를 하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표절이 아닌 것이다. 서태지의 마니아 대부분은 <난 알아요>와 < girl you know it's true >는 같은 샘플링으로 만든 곡이라서 유사하게 들린다고 옹호한다. 만약 서태지가 똑같은 샘플링으로 작곡 했다면 서태지의 앨범에 샘플링에 대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표절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두눈이 몸담고 있는 미술분야 또한 표절 시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태지의 표절 시비를 미술사적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_ 모나리자 _ 나무위에 유체 _ 77 x 53cm 1503~1506년
마르셀 뒤샹 _ L.H.O.O.Q _ 복제품(복제화에 연필) _ 19.7 x 12.4cm _ 1919년

출처 : 그림이 있는 카페


(L.H.O.O.Q 말은 프랑스 어로 발음하면 ‘그 여자는 뜨거운 엉덩이를 가졌다’란 뜻이다. 뒤샹이 한 일은 엽서를 사서 수염을 그려 넣고, 제목을 적은 일뿐이다. 하지만, 이작품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유명한 작품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고정관념을 전복 시켰다.)


 

玄齊 심사정 _ 船遊圖 선유도 _1764년

 


현림 정승섭 _ 倣 玄齊 방 현재 _ 465 x 350 mm
출처 : 마이클의 블로그


(전통 동양화를 배우는 방법은 규범이 되는 그림을 모사하는 것이다. 단순히 원본을 있는 그대로 똑같이 옮기는 것만이 아니라 그린 사람의 정신을 깨닫고 마음으로 이해함으로써 독창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고 여겼다.)




 


 
출처: ★Taiji그의 진실 혹은 거짓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
 전통 동양화는 서양화와 다르게 회화기법을 습득하는 방법을 자연이나 대상을 상대로 하지 않고 선인들의 작품을 모사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화법이나 화풍을 형성하는 것이 통례였다. 문인들은 자연을 관조(觀照)의 대상으로 여기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이를 다시 시나 그림으로 표현하였기 때문에 서양처럼 실물의 재현에 목적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러한 동양화를 배우는 방법으로 3가지 단계가 있다.
모(摹)는 기존의 그림 위에 비치는 종이나 비단을 포개어 형상을 그대로 배께 그리는 것
임(臨)은 배우고자 하는 그림을 옆에 두고 옮겨 그리는 것
방(倣)은 그림의 뜻을 찾아내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여 그리는 것을 말한다.
참고:동양 전통회화와 서양화의 차이점
 

이러한 배움의 방법은 선인의 화풍을 반(反)하는 급진적이고 독창적인 형식을 만들어 내지 못한 단점이 있다. 모, 임, 방을 음악적으로 표현한다면, 카피, 커버, 샘플링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보통 표절 시비가 일어나면 샘플링이 같아서 라며 무마하려고 하는데 이 기법은 흑인에 의해 창안된 것으로 비싼 악기를 살 수 없어서 레코드를 듣는 턴테이블을 이용하여 기존 음악의 일정 부분을 추출, 변형, 반복 하여 작곡하는 방식이다.) 


 난알아요는 습작, 그러나 빅히트
 서태지는 최근 라디오 프로에서 <난 알아요>는 음반 발매를 고려하지 않은 습작이었다며 1위를 하거나 히트 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의 곡으로 발표하기엔 부끄러운 대가 있다는 얘기로 받아 드릴 수 있다. 솔직하게 현림 정승현이 심사정의 그림을 방한 것을 자신의 그림에 표기한 거와 같이 서태지도 처음부터 밝혔더라면 그에 대한 실망감은 애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서태지의 습작이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대중들, 음악 평론가마저도 <난 알아요>의 모태가 된 흑인 음악을 접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분명 서태지가 한국가요계에서 만큼은 앞서간 것이며 그 시대의 대중들의 욕구에도 부합했다는 증거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서태지가 댄스 음악에 록을 접목시킨 것은 독창적이었다.

대한민국이 만든 문화 대통령 서태지 그를 통해 90년대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좋은 예가 아닐까?
대중들이 객관적인 시각에서 받아 드릴 수 있도록 과장된 포장을 제거해주는 것 또한 평론가와 언론의 역할이 아닌가? 이러한 역할이 충실히 이루어져야지만 선진국에서도 통하는 문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창작, 이제는 세계를 무대로 독창성 있게
 새로운 장르가 등장한 것은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태생한 것이고 그러한 것을 창안해 낸 작가의 삶까지도 충분히 이해해야지만 원작 보다 더 나은 독창적인 작업을 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과거 선조들은 단순히 외형의 모방만이 아니라 작품이 담고 있는 정신적인 것까지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모작을 했던 것에 반해 근대에 들어와 생소한 외국 곡(작품)의 새로움에 매료되어 형식적인 면만을 원작자도 표기하지 않은 채 자신의 작업에 무단 도용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창작자라면 반성해 봐야 할 때인 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 원본의 중요성이 사라지고 짜깁기 또한 창작의 일부이지만 원곡을 아는 사람이라면 새로움에 대한 감동은 감소 될 것이며 원곡을 뒤늦게 안 사람이라면 속은 느낌이 들 것이다. 이제는 세계를 무대로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는 독창성 있는 창작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노력은 하지 않고 한국에서 통할 것 같은 외국의 창작물을 표절에 걸리지 않게 짜깁기 하는 방법만을 연구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이제 두 눈을 외부가 아닌 자신의 내부로, 서양의 것이 아닌 우리가 모르고 있는 우리의 것으로 초점을 맞추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다면 나타나지도 마라’

 서태지가 4년 만에 발표한 싱글 앨범에서의 곡은 재킷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표절 시비는 있지만 아직 곡에 대한 표절 시비는 없다. 이러한 결과는 서태지의 안티 팬으로 치부되는 이들이 감히 대한민국이 인정한 문화대통령에게 저항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진정한 서태지의 팬이라면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그의 음악을 듣고 평가하는 것이 서태지를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발돋움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본다.
 유명인이 된 만큼 그 만의 고뇌가 있겠지만 두눈은 서태지가 무진장 부럽다. 그는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작업)을 원 없이 하고 있으니 말이다. 두눈은 서태지가 세계적인 뮤지션이 될 수 있는 감각과 여건을 갖춘 싱어송라이터라고 생각한다. 서태지는 분명 그만이 창안해낸 작곡 방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인터넷을 통해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이 선진국 못지않게 높아 졌고 최상의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그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서태지가 cf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다면 나타나지도 마라’ 



ps: 오늘은 개국 232년이 된 미국인들이 흑인 노예 해방 이후 143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을 선택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통한 혁명을 일구어낸 날입니다. 미국인들이 세계를 놀라게 만드는 군요.




 재미 이상의 그 무엇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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