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눈프로젝트-손톱의운명?인연을만나다!
감응의 구조 유도희전@고양어울림미술관 본문
감응의 구조 유도희전
2025. 12. 4.~11.
고양어울림미술관 제2관
초대일시 12월 6일 4시
오프닝 퍼포먼스_조은성
후원: 경기문화재단



오프닝 퍼포먼스_조은성


뒹굴고 휘고 느끼고 울고 - 동사로서의 조각
최연하(미술비평)
유도희 작가는 프랑스에서 유학 중인 1997년 무렵, 질감이 풍부한 재료를 찾아 나선다. 사물의 흔적, 어떤 접속과 접촉의 지점에서 발생하는 무늬를 그리고 있었다. 물성이 분명하고 특이한 것(singular thing)이어야 했다. 내게 영향을 주고 나의 영향을 받아 ‘내 안의 미지의 것’을 일깨우고 나의 경계를 넘어서는, ‘나 아닌 나들’과 접속하고 싶은 욕망. 모든 작품의 최초의 관객은 그것을 만들면서 동시에 보는 존재인 작가일 수밖에 없기에, 작품이 되는 개체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원인’이 되고 싶었다. ‘울고 있는 나무’를 만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마야인들이 ‘카우추크(caoutchouc, 울고 있는 나무라는 뜻)’라 부른 고무나무는 눈물을 떨구는 나무다. 그 하얀 눈물, 수액이 라텍스가 되고 동그란 공으로, 지우개로, 타이어로 변용되더니 유도희 작가 앞에 컨베이어벨트가 되어 나타난다. 쓸모를 다해 버려진 고무판이었다.
쓸모를 다한 고무의 물성에 작가는 탄성을 자아냈다. 바로, 고무의 유연한 바디와 질감, 무게와 냄새, 언뜻 차가워 보이는 외관 때문이다. 유도희가 만난 고무판은 단순히 ‘특이한 재료’를 넘어, 그 물성 자체로 작품의 의미와 경험을 바꾸는 놀라운 탄성(彈性)을 갖고 있었다. 전통 조각 재료인 돌과 나무에서는 느끼기 힘든 감각 즉, 인간의 피부처럼 고무는 감싸고 늘어지고 닿고 반응하고 감응하는 존재였다. 고무의 변형(용) 가능성은 조각이 고정된 형태라는 기존 관념을 해체하며 조각이 지닌 여러 전제를 무너뜨린다. 고무판은 환경에 따라 계속 변화하고 마모되고 균열을 낳는다. 휘고 말리고 반영하고 중력에 반응하며 자신이 놓인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노화되고 부식되는, 고무판은 유한한 존재다.







구부러지고, 늘어나고, 찌그러지다가 다시 활짝 펴 하늘로 곧추세우는 고무판들. 작품이 된 고무판은 한때 탄광에서 석탄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로 활동했다. 석탄은 대략 3억 년간 땅속 깊은 곳에 파묻혀 있다가 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밖으로 나와 화력발전소로, 제철소로 향하거나 화학 연료로 쓰였을 것이다. 유도희의 고무판에 새겨진 흔적들은 1~3억 년 전에 살았던 식물의 시간과 그가 매몰되어 열기와 압력, 먼지에 파묻혀 석탄이 되기까지, 무수한 변화가 닿아 형성한 것이다. 유도희의 사진 속으로 들어온 고무판은, 자기 위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지나갔을 석탄들을 감각한다. 석탄들은 한때 식물이었던 시절, 태양과 광합을 한 감응의 시간을 기억할 것이다. 유도희의 사진은 고무판에 반사되고 흡수되고 잔류하는 빛을 기록해 먼 옛날과 감각적으로 접속하게 한다. 아주 깊고 먼 곳에서 온 석탄이 고무 위를 지나가며 남긴 미세한 흔적과 시간, 석탄과 고무가 감응한 응결체가 유도희의 고무판 초상사진이다.
어디로 튈지 모를 고무줄처럼, 유도희의 고무판은 조각의 고정성에 대한 저항이자 시간과 기억의 물성이고 인간과 감응하는 생생한 감각 덩어리다. 늘어나거나 처지고, 바닥에 흐르듯 놓여있다가 관람객이 지나가면 흔들리고 마찰로 소리를 내는 고무판은 조각이 더 이상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과정적 존재임을 드러낸다. 정지한 채 형태를 완성하는 대신, 형태를 새롭게 ‘발생’하는 것.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들’과 영향을 주고받는, 유도희의 전시장에서는 작품인 고무판과 관객의 상호작용이 공동 창작자이다.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고 냄새를 맡고 싶게 하는 살아 있는 조각이다.


고양어울림미술관 2층에는 고무판과 그가 찍은 사진과 한때 고무가 살았던 숲 혹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 물, 천둥, 북소리가 ‘어울리’고 감응하며 보이지 않는 사건의 장소가 된다. 유도희 작가는 좌대 없이 고무판을 바닥에 두거나 세우고 벽에 부착하거나 양 끝을 늘어뜨리는 것으로 작업을 마무리한다. 그녀에게 조각(하기)은 행위일 뿐이다. 나머지는 조각이 바람과 압력, 주변의 환경에 따라 스스로 작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기에 관객은 시각 중심에서 신체 전체로 확장해 전시를 관람해야 한다. 조각과 관람객 사이의 관계성이 새롭게 창조되는 몸으로 만나는 예술. 유도희의 고무판 작품은 감상 대상이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 움직이는 존재이기에 눈으로만 보지 말고, 근육같은 생동감을 만지고 듣고 느껴보시길. 그때 전시장은 유기체적 생명 환경으로 되살아날 것이다.
유도희 작가는 특정한 형상을 모방하지 않고 고무의 특성인 탄성과 유연한 회복력을 살려 ‘고무 그 자체로서의 조각’을 구현한다. ‘매체로서의 고무(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접근이다. 작가는 그동안 들판, 바닷가, 흙길, 숲…에 고무판을 덩그러니 놓았다. 나무처럼 돌처럼 사람처럼 서 있거나 눕고 요기처럼 동작을 멈춘 채 선(禪)의 경지에 이른 검은 고무판을 사진으로 촬영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고무판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고무판과 작가 자신이 있어야 할 특별한 장소를 함께 경험하며 감각의 장(field)을 이루는 것이 그녀의 조각 행위이다. 스스로 매체가 되어 세계와 접속하는 이러한 몸짓이 귀하지 않을 수 없다.





고양어울림미술관_경기 고양시 덕양구 어울림로 33 별따기배움터 2층(10시~18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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