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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부탁한다. 명장님들에게 손톱 모아 주라고 하지 마라

실천예술가두눈 2020. 11. 10. 23:59

매년 서울에서 아버지가 전시하시면 설치와 철수를 해 드렸고 자연스레  명장님들을 뵙게 된다. <상징적 가치로서의 전환> 작품에 제격인 노동의 부산물이 낀 명장님들의 손톱을 기부받았으면 해서 명함을 드리며 손톱 기부를 부탁드렸지만, 한 번도 기부받은 적은 없었다.

작년 추석 때 오래간만에 본가에 갔었는데 또다시 아버지와 불화가 심해져 서울로 복귀한 후  연락도 하지 않고 지냈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연락이 와서  "아버지가 아프니 네가 내일 작품 설치를 해주라" 하셔서 마지 못해 다음날 미술관으로 갔었다. 1년 만에 아버지를 뵈었고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셨다.  설치하다 1년 만에 다시 뵌 명장님 몇 분에게 손톱을 모으고 계시는지 물어보았는데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아무래도 모으고 있지 않은신  모양이다. 나는 설치를 속히 끝내고 나의 공간으로 돌아갔다.http://dunun.org/277614

다음날 아버지에게 문자가 왔다. 철수 지시와 함께 "너에게  부탁한다. 명장님들에게  손톱 모아 주라고 하지 마라. 그분들은 아들을 왜 그런 작업을 시키느냐고 반문한다. 내가 할 말이 없고 마음이 항상 답답하다."
그 누구도 시켜서 하는 작업이 아닌데 나 역시도 답답해졌다. 오래전 석사 논문을 읽어 본 아버지가 나에게  하신 말씀이 "너를 어릴 적에 일을 시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스럽다"고 하셨다. 논문에 아버지 일을 도와 드리고 때 낀 손톱이 보일까 봐 부끄러웠고 그 기억을 통해 때 낀 손톱의 또 다른 의미를 발견했음을 서술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도 모아주지 않는데 다른 명장님들이 모아 줄 가능성은 더 없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다행히 상징적 가치로서의 전환은 조윤환 조각가님이 꾸준히 삶의 부산물이 낀 손톱을 모아주셔서 10분의 8은 완성을 한 상태이다. 아트팩토리 난장판에 형수님과 전시도 보러오시고 즉석 손톱 기부도 해주셨다. http://dunun.org/281428 
삶의 부산물이 낀 손톱으로 만든  <상징적 가치로서의 전환>이 완성되면 가장 먼저 명장님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 
 

 


오늘 아버지 작품을 철수하는 날이라 미술관에 갔었는데 철수를 담당하신 분이 너무 복잡해 포장을 못 하겠더라고 하시며 포장을 해주면 잘 운반하겠다고 하셨다. 기존 포장제를 재활용하다 보니 포장하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전시 축하 화분도 포장해서 트럭에 실어 김해로 보냈다. 복귀하는 길에 나도 필수 노동자의 일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하려면 작품 설치와 철수를 꼭 해야 하기에 이러한 일을 하는 것도 필수 노동일 것이다.  그리고 손끝을 보호하면서 노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손톱은 삶의 필수 도구라 할 수 있다. 
 
안도현 시인님의 <너에게 묻는다>를 패러디한 글귀가 마음에서 떠 오른다.  
 
손톱 함부로 잘라 버리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시원함을 준 적이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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